홍릉과 유릉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능이자, 격동의 근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적지이다. 이곳은 단순한 무덤을 넘어, 조선의 왕릉 제도와 대한제국 황제릉의 위엄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홍릉은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재위 1863~1907)**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의 합장릉이다. 고종 황제는 재위 기간 동안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의 재위 기간에 발생했으며, 이는 조선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근대사의 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명성황후는 특히 을미사변(1895년) 때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당한 비운의 황후로 기억된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처음에는 서울 청량리에 조성되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훗날 고종의 능에 합장되며 현재의 홍릉이 되었다.
광무 원년(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칭호를 사용하면서 홍릉은 이전 조선왕릉과는 확연히 다른 형식을 취하게 된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효릉(孝陵)**의 무덤 제도를 참고하면서도 조선왕릉의 전통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황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자 했다. 이에 따라 능을 지키는 석물(石物)의 규모와 종류가 훨씬 커지고 다양해졌다. 이전 왕릉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린, 코끼리, 해태 등 다양한 상상의 동물 석상이 배치되어 황제국의 위상을 드러낸다.
유릉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재위 1907~1910)**과 그의 두 황후인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씨,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의 무덤이다. 유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한 봉우리에 3개의 방을 만든 동봉삼실릉(同封三室陵)**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는 왕실의 마지막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효율적인 공간 활용과 더불어 황실의 위엄을 지키려 했던 노력의 결과로 해석된다.
홍릉과 유릉은 모두 철종 이전의 조선왕릉과는 확연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면서 능 제도가 황제릉에 맞게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능 주변의 공간 활용과 석물 배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두 무덤을 하나의 큰 공간으로 묶기 위해 외곽에 담장을 설치하여 독립적인 구역을 형성했고, 양 능의 중간에는 돌로 만든 연못을 두어 조경적인 아름다움까지 고려했다. 홍릉과 유릉은 단순한 황실의 무덤을 넘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대한제국이 자주적인 국가로서의 위엄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현장이다.